[서울광장] 경찰개혁 ‘임계점’, 정인이의 비극/박홍환 논설위원

[서울광장] 경찰개혁 ‘임계점’, 정인이의 비극/박홍환 논설위원

박홍환 기자
입력 2021-01-12 17:06
수정 2021-01-13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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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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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년 전이다. 형사소송법 196조 1항 ‘검사의 경찰 수사지휘’ 조항을 삭제한 개정안이 지난해 1월 1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동안의 형사사법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검경 수사권 조정, 아니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다. 유예기간을 거쳐 올 1월 1일부터 경찰은 독자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고, 수사종결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30년 숙원이 풀렸으니 경찰은 잔칫집처럼 들썩였고, 경찰들은 “이젠 ‘영감’들에게 자존심 구길 일 없을 것”이라며 독립의 꿈에 부풀었다. 조직을 국가경찰, 수사경찰(국가수사본부), 자치경찰로 나누는 등 ‘공룡경찰’의 우려를 불식하려고 내놓은 권한 분산의 모양새도 얼핏 그럴싸해 보였다. 그 내용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이런 희망과 기대를 가득 담아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 4일 국가수사본부 현판식에서 “형사사법체계 개혁에 담긴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남용하지 않겠다”며 “공정성과 전문성을 갖춘 전문수사로 국민 눈높이에 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이틀 후 김 청장은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자처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깊숙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경찰의 ‘정인이 사건’ 부실 수사가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김 청장은 “학대 피해를 당한 어린이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초동 대응과 수사 과정에서의 미흡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경찰의 최고책임자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잔칫상’ 음식이 급히 식어 버려 ‘제삿상’으로 바뀐 격이다.

일 년. 생각하기에 따라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경찰은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 개혁의 진통은 싫었고, 독립의 부푼 꿈만 꿨던 것은 아닐까.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해 11월 법무부 실세 실장을 지내는 등 정권과 밀착된 ‘이용구 변호사’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을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얼버무리다 결국 ‘없었던 일’로 처리했다. ‘이 변호사’는 검증을 거쳐 한 달 뒤 법무부 차관이 됐다. ‘이 변호사’와 사건 담당 경찰 간의 대화 내용은 아직까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 양천경찰서는 정인이를 진찰한 소아과 의사의 학대 의심 신고를 앞선 두 차례의 신고와 마찬가지로 ‘없었던 일’로 처리했다. 정작 신고한 의사에게는 처리 결과를 알리지도 않았다. 한달 후 만 두 살이 채 되지 않은 정인이는 양부모의 학대와 폭행으로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파열된 채 생후 16개월 만에 숨을 거뒀다. 수사권을 쥐게 된 경찰의 부작용을 여실히 드러낸 두 사건이다. 특히 정인이 사건에서 드러났듯 미완의 경찰개혁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꼭 1년 전 이런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형사사법체계는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매우 중대한 문제다. 그런 만큼 이제부터 준비를 철저히 해 조기 정착이 가능하도록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독자적인 수사권을 갖게 된 경찰이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많은 국민들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 찬성했지만 상당수 국민이 경찰 수사를 불신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화성 8차 사건’, ‘삼례 나라슈퍼 사건’ 등 경찰의 강압수사 흑역사가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버닝썬 유착 의혹’ 등 부패 경찰의 존재도 경찰 수사의 불신을 초래하곤 했다. 과거의 악습을 답습한다면 국민들은 언제고 또다시 경찰의 수사권을 뺏으라고 요구할지도 모른다.’

경찰개혁은 검찰개혁과 불가분의 관계다. 검찰을 개혁하면 필연적으로 검찰의 권한 중 일부가 검찰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경찰은 과연 믿을 만한가. 이것이 경찰개혁의 출발점이어야 했다. 허송세월한 탓에 경찰은 결국 정인이 사건을 자초했다. 경찰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여전히 경찰청장 1인을 중심으로 강력히 중앙집권화했고, 계급제를 기반으로 한 권위주의적 조직 문화가 팽배하다. 여기에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낮다. 게다가 시민을 상대로 한 엄청난 물리력을 가졌지만, 경찰 지휘부의 인권감수성은 여전히 낮다. 미완인 경찰개혁으로는 언제고 제2, 제3의 정인이와 ‘백남기 농민’ 같은 피해자가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국민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검찰개혁의 임계점이자 출발점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탈법적·월권적 수사였다면 경찰개혁의 임계점은 정인이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경찰의 무능하고도 무책임한 수사다. 지금 온 국민은 올바르고도 확실한 경찰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stinger@seoul.co.kr
2021-01-1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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