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부 삭제 문건에 추정 제목
‘이적행위·북풍’ 시대역행 공방
북한 원자력발전소 건설 지원 의혹으로 정치권이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시끄럽다. 이적행위, 북풍공작 등의 시대착오적인 용어들까지 재소환하며 여야가 코로나19 위기를 무색하게 하는 정쟁에 휘말려 있다. 4월에 치러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임박한 상황과 맞물려 때아닌 이념 논쟁으로 번져 국민이 또다시 양분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여야의 자중을 촉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먹고살 일을 걱정하며 밤잠을 설치고 있는데 여야가 실체조차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의혹만으로 죽기 살기로 치고받는다면 국민은 어쩌라는 말인가.현재까지 확인된 건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조작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이 삭제한 문서 파일 목록에 ‘북한 원전 건설 및 남북 에너지 협력’과 관련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제목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것 정도다. 검찰 공소장에 첨부된 목록에 따르면 삭제된 북한 관련 10여개 문건은 2018년 5월2~15일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1차 남북 정상회담(2018년 4월 27일)과 2차 남북 정상회담(2018년 5월 26일) 사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해당 파일들의 상위 폴더 이름은 핀란드어로 북쪽(뽀요이스)을 뜻한다고 한다. 북한 원전 지원과 관련한 은밀한 계획이 당시에 진행된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해당 보도가 나오자 “우리 원전은 폐쇄하고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 주려 한 것은 충격적인 이적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북한 원전 건설 지원이 사실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에 질세라 청와대는 “‘북풍공작’과도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빠르게 비판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여권은 야당의 공세를 보궐선거용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문건의 내용이 온전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측만으로 정치 공세를 펼치는 것도, 그렇다고 정색하면서 총력 반격하는 것도 책임 있는 정치의 본령은 아니라고 본다.
남북 정상회담 시기에 북한 원전이 논의됐다는 의혹은 지난해 11월에도 제기됐으나 남북 정상회담 추진에 깊숙이 관여했던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원’ 자도 나오지 않았다”고 부인한 바 있다. 산업부는 삭제 문건이 남북 경협 활성화에 대비해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내부 자료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검찰 수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 뭐가 진실인지 실체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의혹만 앞세운 공방은 소모적 논쟁으로 국력 낭비만 불러올 뿐이다. 여야는 실체가 확실히 규명될 때까지 잠시 정쟁을 접어 두길 바란다.
2021-02-01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