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이 형평성을 유지하지 못해 직장을 잃은 이에게 오히려 지나친 부담을 준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한 보도에 따르면 2009년에 직장을 나와 지역가입자가 된 130만명 가운데 절반인 64만명이 월 평균 보험료를 3만 6715원(본인 부담)에서 8만 1519원으로 2.2배나 더 내게 됐다고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직자가 되면 대개는 수입이 끊겨 모은 돈으로 가족 생계를 어렵게 이어가야 한다. 그런 상황에 보험료가 줄기는커녕 고정수입을 가졌을 때보다 갑절 이상 내야 한다면 이만큼 가혹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는 까닭은 현 건보체계가 지역가입자에게는 종합소득, 부동산 등의 재산 보유 상태, 자동차 유무에 따라 보험료를 책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산층·서민층 대부분에게는 재산이 있어 봐야 그저 가족이 몸 담아 사는 집 한 채뿐이요, 그동안 굴려온 자가용 하나뿐이다. 집과 자동차는 생활의 연장이지 수입의 원천은 아닌 것이다.
지금은 베이비부머(1955~63년 출생한 자) 세대가 벌써 집단으로 퇴직을 맞은 시대이다. 게다가 우리사회가 실직자와 그 가족에게 기초적인 생활 보장을 해줄 만큼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엮어 놓은 상태 또한 아니다. 따라서 집과 자동차가 있다고 해서 고정수입이 없는 집에 ‘건보료 폭탄’을 퍼붓는다면 실직한 집안의 가계에 큰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이요, 국민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터이다.
건강보험의 목적은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질병·사고·부상 탓에 거액의 진료비를 내느라 가계가 치명상을 입지 않게끔 보호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수단은 세금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입이 많은 사람은 많이, 적은 사람은 적게 내서 기금을 모으는 일이다. 그러므로 당초 목적에 어긋나지 않게 건보료 책정 기준을 바꾸어 최소한 실직자에게 부담을 더하는 사례는 없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서민과는 어차피 상관없는 일정규모 이상의 금융·임대 소득에 건보료를 부과해 실제로 돈이 많은 이들이 건보료를 더 내게끔 정책을 바꿔야 한다. 이야말로 정부가 내세운 ‘친서민’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길이다.
2011-05-12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