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재 세상 추임새] 너 자신 외에 모든 이를 용서하라

[박명재 세상 추임새] 너 자신 외에 모든 이를 용서하라

입력 2011-05-12 00:00
수정 2011-05-1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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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가장 좋은 5월을 맞으면서 지나간 4월에 우리 역사상 아물지 않았던 상처 하나가 아름답게 매듭지어졌으면 하는 아쉬운 사건이 있었다. 다름 아닌 쉰한 번째 맞는 4·19혁명 기념일에 고(故)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씨가 4·19 희생자 묘역을 참배하고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사죄를 하려 했으나 관련 단체의 저지로 무산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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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재 CHA의과학대 총장
박명재 CHA의과학대 총장
유족들의 원통하고 한 맺힌 심정을 잘 알 수 없는 제3자의 입장에서 섣불리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망설여지는 일이다. 다만 눈여겨볼 대목은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쪽에서는 사죄가 진정성이 없고 사전에 적절한 절차나 교감 없이 갑작스레 이루어졌다고 주장함으로써 사죄의 가장 본질적 요소인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죄과”라고는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참배와 사죄를 거부당한 이씨 쪽에서도 “그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며 더 늦어지기 전에 역사의 잘못을 사죄하고 화해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뜻”이라고 밝혀 계속해서 사죄를 해나갈 뜻임을 분명히 했다.

잘하면 쉽사리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질 것 같다는 희망 섞인 생각을 하면서 몇 가지 이유로 역사의 한 매듭과 당사자 간의 응어리가 풀리기를 기대한다. 첫째, 사죄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사건의 당사자가 진정성을 가지고 하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즉, 당사자의 적격성 측면에서 볼 때 현재 이승만 전 대통령을 대리할 사람은 양자인 이인수씨밖에 없다. 그분은 엄연한 법적 후계자 내지 대리인으로서 아비의 죄를 자식이 비는 법적, 윤리적, 인간적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정치적 사면과 용서·화해는 역사가와 국민들의 몫이며, 그가 어떤 정치적 사면과 용서를 바라지는 않고 있다. 무엇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80을 넘은 그의 생전에 사죄와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뒷날 다른 어떤 자연인이나 단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죄는 그만큼 당사자 적격성에 치명적인 흠결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둘째, 우리가 어떤 잘못과 과오에 대한 용서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용서가 잘못을 예방하고 근절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또 다른 잘못과 과오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반복성의 효과에 대한 의문과 염려 때문이다. 프랑스 격언 중 ‘쉽사리 용서해 주면 잘못을 반복시킨다.’라는 말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국민적·정치적 역량과 수준에 비추어 볼 때,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용서와 화해가 더 이상 이 땅에 또 다른 독재의 망령을 부활시키거나 학생운동을 무자비하게 총칼로 탄압하고 희생을 되풀이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4·19혁명의 숭고한 이념과 발전적 미래가치의 정립 그리고 역사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양자 간에 사죄와 용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의 건국과 4·19혁명의 민주화, 5·16의 산업화, 현재의 선진화 그리고 미래의 통일 한국으로 나아가야 할 역사적 맥락과 정체성 측면에서 꼭 매듭지어야 할 역사적 과제이자 필연이기 때문이다. 용서와 화해는 논리나 사변의 이성적 차원이 아니라 감정과 정서의 인간적 차원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우리 속담에 ‘귀신도 빌면 듣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머리 허연 80 노인이 살아생전에 양부의 역사적 과오와 허물을 빌기 위하여 묘역에 나왔다가 이리 밀치고 저리 떠밀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 노인이 세상 떠나기 전에 진정한 사죄와 용서 그리고 역사적 화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박하고 순수한 마음은 비단 필자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숱한 전쟁과 보복의 왕조사가 점철된 영국에 유난히 용서에 관한 격언이 많다. 그중 아래 두 가지를 인용하면서, 늦어도 내년 4월까지는 양쪽 간에 아름다운 사죄와 용서가 이루어져 우리 역사의 한 매듭이 마무리 되기를 희망한다. ‘너 자신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을 용서하라.’, ‘용서는 가장 고귀한 승리이다.’
2011-05-1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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