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동 鐘樓에서] 세월호 사건과 미디어 권력의 빛과 그늘

[이태동 鐘樓에서] 세월호 사건과 미디어 권력의 빛과 그늘

입력 2014-06-02 00:00
업데이트 2014-06-02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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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밝히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담론이다. 이미 19세기의 토머스 칼라일은 언론을 입법, 사법, 행정에 이어 제4권력이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고, 20세기의 언론학자 마셜 맥루한은 텔레비전의 거대한 위력을 보고 “미디어가 메시지다”라고까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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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동 문학평론가·서강대 명예교수
이태동 문학평론가·서강대 명예교수
그러나 민주사회에서의 권력은 언제나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함께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도덕적 정당성을 잃게 되면 그것은 사회 발전을 위한 동력이 되지 못하고 무서운 폭력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제4의 권력’이라고 말하는 언론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시카고 대학의 유명한 영문학자이자 언론학자인 웨인 부스는 ‘저널리즘에 있어서의 사실과 가치’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언론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담론이지만, 고급한 정론지(혹은 건강한 공정방송)의 길을 걷지 못하고 상업주의를 추구하는 저급한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지게 되면, 그것이 지닌 가치와 사회적인 기능을 상실하게 됨은 물론 오히려 사회에 큰 손상을 입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고는 최근 우리나라의 언론이 세월호 침몰 사건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뉴스의 가치는 신속·정확함에 있다고 하지만, 거의 모든 방송사들이 너무나 성급하게 끝을 보겠다는 자세로 24시간 계속해서 참사 현장을 여과 없이 카메라로 비쳐 국민들을 지치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MBN과 JTBC는 정부를 불신하고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겠다는 것처럼 오만한 자세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해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었고, 자학(自虐)에 빠질 정도로 집단적인 외상(外傷)을 입혔다. 이러한 일부 방송사들이 보인 무절제한 태도에 말 없는 다수의 국민들은 적지 않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세월호의 비극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참사다. 그러나 그것에 우리나라 전체가 완전히 침몰되어 있을 수는 없다. ‘태양은 다시 떠오르기’ 때문에 블레이크의 말처럼 ‘뼈가 묻힌 무덤이라도 달구지는 몰아야’ 한다. 수장(水葬)을 한 304명이나 되는 후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도 살아남은 자들은 쓰러져 있지 않고 일어나야만 아이들을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그들의 슬픔을 위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문학적인 담론을 얘기한다면, 비록 방송인들은 뉴스는 신속해야 하고 보도의 대상이 되는 사실과 가치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이러한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낡은 것이다. 화이트헤드와 폴라니 등과 같은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우주에는 사실과 가치가 분리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방송사들이 세월호 참상에 대해 나라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의 절제력 잃은 충격적인 보도를 함으로써 국민들을 실망시킨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너무나 많이 난립한 방송사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 문제로 인한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질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방송기자들이 시청자들에 대해 언제나 일방적인 통로로 담론을 전개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주장만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착시현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자는 권력이 강해지면 아이러니하게 자칫 그것의 힘에 지배되거나 압도되어 인간성을 잃어버린 불손한 얼굴로 나타날 수 있다. 윌리엄 피트는 “무제한의 권력은 지배자를 타락시킨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대중의 의식 세계를 지배하는 제4의 권력을 행사하는 언론사들이 KBS처럼 겸손의 미학과 인간에 대한 예의는 물론 동료 간의 신뢰마저 버리고 진영 논리로 진흙탕 싸움을 하게 되면, 그 존재 가치를 스스로 상실하게 될 것이다.

뒤늦게나마 최근 언론인 5623명이 세월호 보도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시국선언을 하며 언론의 사명을 되새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2014-06-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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