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나이지리아에도 희망의 노란 리본을/이순녀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나이지리아에도 희망의 노란 리본을/이순녀 국제부장

입력 2014-05-13 00:00
업데이트 2014-05-13 00:22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돼간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마치 집단 악몽을 꾸는 듯 허우적댔던 시간이 그렇게 속절없이 우리 곁을 지나갔다. 악몽은 깨어나면 끝이지만 차디찬 시신으로 돌아온 희생자와 아직 행방조차 알지 못하는 실종자를 합한 304명의 가족들에겐 지금이 고통의 시작에 불과하기에 다가올 시간이 더 막막하고 두려울지 모른다.

이순녀 국제부장
이순녀 국제부장
대형 재난이나 사고로 인한 다수의 무고한 희생은 매번 슬프고, 안타깝다. 그런데 이번엔 분노가 안타까움과 슬픔을 압도했다. 백번을 양보해서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벌어진 선원과 선사, 해경, 정부의 온갖 비리와 부정, 비상식적 행태에는 분노라는 원초적인 감정 말고 달리 표출할 방법이 없다. 어제 아침, 어느 신문이 1면에 보도한 ‘해경이 대응만 제대로 했어도 전원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검찰 관계자의 말이 차라리 거짓이길, 그래야 유족들의 한이 미세먼지만큼이라도 덜어지지 않을까 싶은 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가 한마음으로 세월호의 기적을 바라고 있는 동안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도 200여명 학생의 부모들이 밤낮으로 자식의 무사귀환을 기원해 왔다. 세월호 사고가 나기 이틀 전인 지난달 14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에 집단 납치된 보르노주 치복시 여학교의 학생 276명 가운데 일부 탈출 학생을 제외한 200여명의 행방이 아직까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같은 시기에 벌어진 두 비극적 사건에 대처하는 양국 정부의 행태는 씁쓸하게도 닮은 점이 많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사건 발생 수일이 지날 때까지 정확한 피랍자 수를 몰랐다. 군 당국은 납치 발생 사흘 뒤인 17일 “납치된 100여명 대부분이 풀려나고 실종자는 8명뿐”이라고 했고, 보르노주는 19일 “44명이 탈출했고, 95명이 실종 상태”라고 말하는 등 엉터리 발표를 계속했다. 당국은 수색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참다못한 학부모들이 직접 외딴 숲을 뒤지러 다녔다. 알고 보니 사건 발생 직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각국이 구출을 돕겠다고 했지만 굿럭 조너선 대통령이 이를 거절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너선 대통령은 열흘이 지나서야 마지못해 성명을 발표했다. 나이지리아 전역에서 정부의 무성의한 대응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학부모들은 ‘우리 딸들을 구해달라’는 종이를 들고 수도 아부자를 행진했지만 정부의 대응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이달 초 보코하람이 동영상을 통해 자신들의 납치 사실을 시인하며, 여학생들을 노예로 내다 팔겠다고 협박한 것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관심이 급증하면서 그나마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도 대통령은 피랍자 부모들이 경찰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대통령의 부인은 납치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고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음모라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더욱이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정부는 사건 발생 4시간 전에 첩보를 입수하고도 이를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으니 누가 누구를 흉볼 처지는 아니지만 믿고 의지할 만한 정부의 모습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대한민국 곳곳에 노란 리본이 넘쳐나고 있는 것처럼 지금 트위터에는 ‘우리의 소녀들을 돌려줘’라는 해시태그(#)를 단 글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소녀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나이지리아에도 희망의 노란 리본을 건네본다.

coral@seoul.co.kr
2014-05-13 30면
많이 본 뉴스
핵무장 논쟁,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에서 ‘독자 핵무장’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평화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반대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독자 핵무장 찬성
독자 핵무장 반대
사회적 논의 필요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