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가정방문 부활하면/박홍기 사회부장

[데스크 시각] 가정방문 부활하면/박홍기 사회부장

입력 2012-02-24 00:00
업데이트 2012-02-2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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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찍이 선생님이 자전거를 타고 오셨다. 동네 어귀에서 기다렸다. 집으로 모셨다. 어머니는 땀 흘리시는 선생님께 과일과 함께 시원한 미숫가루 물을 대접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선생님은 제자를 옆에 앉히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셨다. 지금 생각하면 짧은 시간 같은데 참 길게 느껴졌다. 선생님이 일어나시면 다른 친구 집까지 안내했다. 기억 속에 있는 가정방문의 풍경이다. 일본 도쿄에서 특파원으로 일할 때 일본 교사의 가정방문을 받았다. 40년 만에 학부모로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의 일본 선생님을 맞았다. 선생님에게 딸의 학교 생활을 물었고, 선생님은 외국 생활의 어려움이나 한국의 생활 등을 궁금해했다. 딸의 방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다지 어색하지도, 길지도 않았다. 딸도 있었다. 선생님에게 믿음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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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기 사회부장
박홍기 사회부장
가정방문은 가정과 학교라는 중요한 두 축을 연결, 긴밀한 유대관계를 갖도록 하는 가장 효율적인 학생 생활지도 방식으로 꼽히고 있다. 소통이다. 교육적 측면에서 가정환경을 직접 파악함으로써 성적뿐만 아니라 품행, 적성, 어려움 등 근본적인 사항을 두루 살필 수 있다.

학교 폭력과의 전쟁이 한창이다. 대통령은 “가해 학생들에 대한 엄벌”을 주문했다. 부처 합동으로 학교 폭력 근절 종합대책도 내놓았다. 한때 비교육적, 인권 침해 등의 부작용 탓에 꺼내기조차 꺼렸던 것들까지 쏟아져 나왔다. ‘정책 결핍증’으로 비칠 정도로 엄청난 가짓수다. 가해 학생을 출석정지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생생활기록부에 가해 사실을 기록, 낙인을 찍도록 했다. 형사처벌과는 별도다. 교육적 접근의 필요성을 들고나왔다가는 경을 칠 분위기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더한 죗값을 물어도 시원찮을 것이다. 학교 폭력을 뿌리 뽑아야 함은 마땅하다. 경찰청장은 “4월까지 학교 폭력을 근절 수준으로 떨어뜨리겠다.”고 선언했다.

공격적 대응 못지않게 방어적·예방적 차원의 대책도 없지 않다. 투 트랙이다. 한 학급에 두 명의 담임을 두는 복수담임제 도입이라든지, 전문상담사의 대거 충원은 평가할 만하다. 엄청난 예산과 함께 인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것들이 태반이다. 가정방문은 없다. 가정방문의 교육적 효과를 익히 알고 비교적 쉽게 갈 수 있는데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지름길을 놔두고 돌아가는 격이다. 가정방문의 폐단을 우려해서일 거다. 가정방문은 폐지, 부활, 폐지를 오갔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교장의 책임 아래 사안별로, 미리 통보한 뒤라는 조건 아래 풀렸다. 형식적 허용이다. 가정방문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로서도 돈 봉투로 축약되는 불미스러운 일의 빌미를 제공하고 싶지 않았을 법하다.

조건이 붙지 않은 자유롭고 실질적인 가정방문이 지닌 의미는 크다. 교사와 학부모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번거롭고 힘들 것이다. 거리낌 없이 쉽고 편하게 만나는데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부작용에만 집착하다가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개그콘서트의 김원효처럼 “안 돼.”만 외칠 수는 없다. 자식이, 제자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 피해자가 될 처지에 놓인다면 “통신수단이 발달한 시대에”, “맞벌이로 시간을 낼 수 없는데”, “업무가 많은데”, “구태여 나섰다가”라며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으며 “안 돼.”라고만 되뇔 수 있을까.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식의 전환이다.

교사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할 때다. 경찰이 교사에게 직무유기를 거론할 만큼 교권 추락은 심각하다. 교사들은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깨야 한다. 내로라하는 학력과 실력을 검증받은 상위 5% 집단이지 않은가. 과거보다 더 큰 소명감이 아닌 교사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신뢰 회복을 위해서다. 진정성을 갖고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정부도 복수담임제, 전문상담사, 행정요원 등의 충원과 함께 잡무 경감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한껏 힘써야 함은 당연하다. 발생한 학교 폭력이 경찰, 검찰의 몫이라면 학교 폭력 예방은 교사가 맡아야 할 과제이다. 교사의 힘은 크고 중요하다.

hkpark@seoul.co.kr

2012-02-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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