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호 새벽을 열며] 책 읽는 대학생을 위한 축복

[최동호 새벽을 열며] 책 읽는 대학생을 위한 축복

입력 2013-04-11 00:00
수정 2013-04-1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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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시인
최동호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시인
봄꽃 축제가 절정에 이르려 하고 있다. 제주 유채꽃 축제에서 비롯된 축제는 바다 건너 진해 벚꽃 축제, 그리고 광양의 매화꽃 축제를 시발로 한반도 남부를 물들이더니 이제 중부를 넘어 서울로 진입하고 있다. 서울 도심을 걷다가 벚나무의 봉오리들이 바야흐로 꽃잎을 내밀고 있음을 보았다. 그런데 봄꽃축제에는 언제나 꽃샘바람이 뒤따르고 비바람이 몰아쳐 화려한 꽃들이 다 개화하지도 못한 채 허망하게 지는 것을 본다.

화려한 봄꽃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이 대학의 신입생들이다. 교정을 가득 메운 그들의 발걸음을 보고 있으면 푸르고 빛나는 한국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 오직 입시를 위해 질주해 온 그들의 지옥 같은 학교생활이 끝나 봄꽃처럼 만개한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누려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꽃샘바람처럼 매정하고 냉랭한 바람이 등 뒤에서 몰아쳐 올지 모른다. 관악산의 한 연못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 신입생 중 한둘이 해마다 봄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다고 한다. 다른 한 대학에서는 담당 교수가 자신의 책을 사지 않는 학생들에게 강제로 인지를 붙이라고 했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담당 교수를 질책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책을 거의 읽지 않는 대학생들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있었다. 또 다른 대학에서는 책을 읽지 않는 학생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무료로 선물했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제출하는 리포트에서 입증된다. 과연 과제로 제시된 책을 읽었는지 의심스러운 내용의 개성 없는 리포트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수업 시간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던 학생들도 리포트는 상당히 매끄럽게 정리해 제출하기 때문에, 인터넷 정보를 짜깁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책에 굶주린 시대가 있었다. 1960년대 청계천 책방을 헤매면서 읽고 싶었던 한 권의 책을 구했을 때 느낀 기쁨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다. 밤새도록 읽고 나서 책을 구하지 못한 동급생들과 함께 나누어 보던 것 또한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책이 도처에 넘쳐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책은 독자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정보를 접하는 통로가 달라진 결과일 것이다. 인터넷이나 컴퓨터가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시키는 오늘날 책, 특히 종이책은 오히려 골칫거리가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책 읽는 대학생만이 그들의 미래를 헤쳐 나가는 귀중한 지혜를 터득한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다. 그것이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 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다. 책읽기를 통해 인간은 체계적이며 실제 경험에 가장 근접한 세계를 접할 수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며 그 생각의 깊이와 넓이에 비례해 그가 지닌 내재적 가치의 용량도 커진다는 것이다. ‘천재의 작품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발견한다’는 것은 오래된 금언이다. 다른 말로 풀이하면 책 읽기를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는 뜻이다. 데카르트 이래 인간은 사고하는 존재로 자기 발견을 했다. 그것은 신으로부터의 인간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디지털시대가 원하는 인간은 생각하고 창조하는 인간이다. 창조는 사색으로부터 나오고 사색은 책읽기로부터 나온다.

프랑스의 한 시인은 ‘모든 위대한 것은 책으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이를 변형시켜 ‘모든 위대한 것은 책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할 수 있다. 나뭇가지에서 꽃이 피어나듯이 책에서도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봄꽃의 축제에 취하는 것도 기쁨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면서 책읽기의 축제로 승화시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입시에 골몰해 온 자신의 내적 결핍을 충전시키기 위해 책읽기에 침잠하는 봄날을 만끽한다면 미래가 남다르게 풍요로울 것이라 확신하며, 그렇게 책 읽는 젊은 대학생들에게 봄꽃축제보다 기쁜 미래의 축복을 전해주고 싶다.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시인

2013-04-1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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