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다방, 카페 그리고 코로나19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다방, 카페 그리고 코로나19

입력 2020-05-17 17:28
업데이트 2020-05-18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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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필원 한남대 건축학과 교수
한필원 한남대 건축학과 교수
황당하고 우울한 코로나19 시절, 그래도 하나 얻은 것이 있다. 인간에게는 꼭 필요한 활동과 그렇지 않은 것, 온라인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깨달음이다. 사람들이 서로 직접 만나서 대화하고 정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는 사교활동은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온라인으로 대체할 수 없는 활동 가운데 하나다. 사교에는 그것의 무대가 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근대기 이전에는 주택 안에 그런 공간이 있었다. 사랑채나 별당 그리고 그 앞의 마당이 그것이다. 근대기에는 집 밖에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일이 잦아졌고 그런 활동에 적합한 공간들이 생겨났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다방이다.

저명한 건축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아모스 라포포트는 1977년에 펴낸 ‘도시 형태의 인간적 측면들’이라는 책에서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다방을 꼽는다.

1968년 한국에는 5000곳의 다방이 있었고 한 곳의 평균 수용인원은 30~50명이었다고 한다. 당시 주로 다방에 드나들었을 20세 이상 인구(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1966년과 1970년의 평균 1443만 6680명)를 다방 수 5000명으로 나누니 성인 2887명당 다방 한 곳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방은 학식 있는 사람들, 중년 남성들이 주로 이용했고 교수나 학생들도 찾곤 했는데, 사람들은 그곳을 휴식을 취하고 대화하고 소식을 주고받는 곳으로 사용했고 사무실처럼 쓰기도 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다방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공간이 있다. 바로 카페다. 통계청의 ‘2018년 기준 서비스업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커피전문점은 6만 6321곳, 평균 면적은 97.5㎡다. 이는 20세 이상 인구 641명당 한 곳꼴로, 인구 대비 50년 전 다방 수의 4.5배다. 한 카페에 평균 30~40개의 좌석을 배치할 수 있으니 수용인원은 50년 전 다방과 비슷하다. 다방에 비해 카페의 수가 월등히 많은 데는 아파트의 급속한 보급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단독주택과 달리 아파트에서는 사교가 일어나기 매우 어려워 집 밖에서 적당한 공간을 찾을 수밖에 없다. 50년 사이 우리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0.8%에서 61%로 크게 늘었다.

다방과 카페는 사회적 기능과 평균 면적은 비슷하나 공간 특성은 서로 많이 다르다. 다방이 외부를 보는 조망보다 내부 공간에 치중한 내향적인 공간이라면 카페는 외부와 시각적 연결을 중시하는 외향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지하 다방은 많았지만 지하 카페는 그리 많지 않다. 내부 공간이 아늑하고 분위기 있는 다방이 인기가 있었다면 아름다운 풍경이 바라다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가 인기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카페 또한 휘청였다. 그러나 주점이나 클럽만큼은 아니다. 집단감염이 발생하지 않은 덕이다. 집단감염은 대개 외부에 대해 폐쇄적인 공간에서 일어났다. 그럼 카페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주도적인 사회적 공간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사람 사이에 2m를 확보하고 환기를 자주 해야 한다는 바이러스가 내건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할 수 있을까.

방법은 공간을 개방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코로나19 같은 유행병의 위협에 대처하려면 내·외부 공간이 시각적 연결을 넘어 공간적으로도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환기를 충분히 할 수 있다. 한쪽 벽면을 떼어내 가로나 마당, 위층이라면 테라스 같은 외부 공간으로 바로 연결하면 활동 공간을 확장해 밀도까지 조절할 수 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교활동을 바이러스의 처분에 맡기지 않으려면 이렇게 사회적 공간을 진화시키는 수밖에 없으리라.
2020-05-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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