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파파와 아버지/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문화마당] 파파와 아버지/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14-04-24 00:00
업데이트 2014-04-2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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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1970년대에 폴 앤카(Paul Anka)라는 유명가수가 부른 ‘파파’(Papa)가 크게 히트했다. 미국보다 오히려 한국에서 더 사랑받을 정도로 유행하다 보니, 국내 유명 가수들도 그 곡을 번안해 다투어 불렀다. 그 가운데 아마도 원조는 이수미가 부른 ‘아버지’일 것이다. 이 노래 또한 크게 히트해 지금도 FM라디오의 7080 프로를 듣다 보면 가끔씩 두 노래 모두 들린다.

그런데 이 두 노래가 전하는 가사 내용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제목부터 좀 어긋난다. 파파라는 영어에는 우리말 아버지보다는 아빠가 더 잘 어울리는데, 이수미가 부른 노래의 제목은 아버지다. 그런데 제목에서 드러난 이런 차이는 가사 내용의 차이에 비하면 차라리 약과다. 두 노래의 가사가 전하는 내용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원곡 ‘파파’는 주로 일상생활을 통해 느낀 아빠의 인간적인 면을 세심하게 그린다.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근면한 가장, 밤이면 어린 자식을 침대에 누이고 기도해 주는 보호자, 아내(엄마)와 사별하고는 인생의 끝까지 동반하지 못한 슬픔에 겨워하는 남자, 인생의 만남과 이별을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는 선생, 성장한 자식을 인생의 동반자이자 독립된 주체로 인정해 주는 어른. 이것이 북미 영어권의 화자(話者)가 성장하며 경험한 파파의 모습이다.

이에 비해 번안곡 ‘아버지’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상당히 단순하다. 아버지는 그저 자식 하나 잘되기를 희구하며 비는 존재일 뿐이다. 잘된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마디 언급조차 없다. 잘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얘기해 주는 인생의 선배이자 어른의 면모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다른 생각은 없이 무조건 자식이 잘되기만 바라는 인간이다.

후렴 부분에서 화자는 아버지의 높은 뜻을 받들며 살겠다고 외치지만, 그 높은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사는 또다시 함구한다. 그러니 문맥으로만 보면 그 높은 뜻 또한 자식이 잘되는 것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가사의 내용은 이게 전부다. 화자의 기억에 남은 아버지의 모습은 이렇게 단순하다. 성장기에 아버지와 나눈 대화 경험이 화자의 기억 속에는 거의 없다. 이것이 한 한국인 화자가 성인으로 자란 후에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이런 차이를 단순히 문화적 차이로 설명하고 끝낸다면 너무 허전하다. 왜냐 하면 오늘날 한국사회가 겪는 가치의 부재 문제는 바로 저런 ‘이상한’ 부자관계에 익숙한 우리들이 만들어낸 산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잘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 돼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잘되는 것인지와 같은 본질적인 가치에는 아버지나 자식 모두 관심조차 두지 않은 채 무조건 달려온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30여년 전의 저 가사가 섬뜩할 정도로 잘 보여준다.

나이만 먹는다고 저절로 아버지가 되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격과 언행이 함께 따라야 한 구성체의 든든한 기둥이 되는 진정한 아버지요 어른이지, 그렇지 않다면 자기중심적이고 고집스러운 한갓 노인일 뿐이다.

아버지에게서 인생의 어른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나 한 몸 잘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온 우리네 인생이요, 그런 우리가 만든 21세기 한국사회다. 흔들리는 숱한 가정에도, 슬픔과 분노로 가득한 이 나라에도, 아버지와 어른은 여전히 부재중이다.
2014-04-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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