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소통과 배려/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마당] 소통과 배려/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입력 2011-12-22 00:00
수정 2011-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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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결손’과 ‘결속’을 구분 짓는 것은 바로 ‘인정’(認定)이다. 내년에 초등학교 6학년에 진학하는 큰아들이 자폐성 발달 장애 어린이다. 생후 30개월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간 세상은 말없이 무너져 내렸다. 매일 손을 잡고 유치원과 학교에 데려다 준 지 6년이 넘었다. 죽는 날까지 그 아이를 어디로 데리고 다녀야 할지 모른다. 아들을 바라보며 가장 애틋한 일은 가족 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아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 주어야 하는지 모를 때다. 가정에 장애인이 있다는 의미는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떤 설명으로도 그 힘겨움의 정도를 전달할 수 없다.

장애아를 둔 가정 가운데 결손 가정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장애 진단을 받는 순간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충격과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은 가정의 질서를 쉽게 무너지게 한다. 자식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과 희생으로 웬만한 고난쯤은 모두 해결할 것 같지만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그래서 결국 결손 가정 아니면 결속 가정이 되는 것이다.

장애를 인정하는 순간 결속도 단단해진다. 장애아를 중심으로 가족들은 끈끈한 유대를 다지게 된다. 반면 장애를 인정하지 않는 순간 결손이 되고 만다. 희망을 포기하게 되고 극단적인 결과로 치닫는다. 가정의 결속이 무너지면서 결손의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다. 장애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면 결국 ‘탓’을 하게 된다. 내 몸에서 나온 아이마저도 부정하게 되는 비극을 자초하게 된다. 장애를 치부로 여기는 일이 가족 간에 벌어지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가족 구성원의 해체를 초래하게 된다.

아파트 1층에 살았던 우리 가족은 얼마 전 고층으로 이사를 했다. 내가 먼저 했던 일은 아이를 데리고 다닐 때마다 장애 사실을 알리는 일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주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 부자를 격려해 주는 주민이 있는가 하면, 한 젊은 부부는 나와 아이를 멀뚱하게 쳐다보며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이 작은 공간에서도 현실의 벽은 높았다. 온 가족이 장애를 인정함으로써 보여지는 끈끈한 결속의 힘은 아홉 살배기 둘째 딸아이의 행동에서 드러난다. 식당 옆 테이블의 손님들에게 “우리 오빠가 장애가 있어서 좀 시끄러울 수 있어요. 죄송합니다.”라며 생글생글 웃는다. 인정하는 순간 장애가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어린아이도 깨닫게 된다. 결국 결속이 가져온 참교육인 셈이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잃는 것이 너무 많다. ‘시기’와 ‘탓’이 난무하는 오늘의 공방전은 상대를 인정하는 배려 없음이 초래한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이어야 하는 이기심은 상대를 이해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결국 깨어지고 곪아 터져서 사회가 결손의 상처로 얼룩진다.

얼마 전 유명 가수가 자신의 쇼케이스에서 후배 가수를 질타하는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린 신인 뮤지션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신념에 따라 방송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충분히 대견해 보였다. 더구나 선배 가수라면 박수를 보내고 격려해야 할 마당에 신인의 자세를 운운하며 질타하는 모습은 그 근거가 너무 미약하고 자기중심적이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후배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선배의 얕은 발언은 기득권을 가진 자의 오만으로 여겨진다.

상대를 인정하고 소통과 배려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인정하는 미학은 결속과 결손을 갈라놓는 중요한 선택이지만, 오늘 우리는 그 중요한 선택을 잊고 산 지 오래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딸아이가 묻는다. “아빠, 저 부부들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거예요?” 내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오빠보다 더 심한 장애가 있는 것 같은데.”라고.

2011-12-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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