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대] 제주 해군기지 문제도 소통 부족/이지훈 지역희망디자인센터 상임이사

[지방시대] 제주 해군기지 문제도 소통 부족/이지훈 지역희망디자인센터 상임이사

입력 2011-09-20 00:00
업데이트 2011-09-20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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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지역희망디자인센터 상임이사
이지훈 지역희망디자인센터 상임이사
해군기지 파동으로 최근 핫이슈의 한가운데 놓였던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이 마을 초등학교와 마을회관이 있는 오거리에는 슈퍼마켓 두 곳이 마주보며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주민들은 A마트, 반대하는 주민들은 B마트만 이용한다. 외부인이 이런 상황을 잘 모른 채 한 슈퍼마켓을 이용하게 되면, 다른 한쪽의 야멸찬 시선을 받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이런 해프닝도 있었다. 지난 5일 오전 “해군기지 반대 세력이 개를 시켜 우리 집 개를 물어뜯는다.”는 신고전화가 서부파출소에 걸려왔다. 경찰이 곧바로 강정마을로 출동해 상황을 파악한 결과 단순 개싸움으로 밝혀졌는데, 사건의 전말이 기가 막히다. 이른바 가해 개는 강정마을에서는 유명한 ‘중덕이’로, 이 놈이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주민 소유의 개를 문 것이다. 단순 개싸움조차 찬반으로 나뉘고, 경찰이 출동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어진 것이다. 웃어넘기기엔 너무나 뒷맛이 씁쓸하다.

이것만이 아니다. 마을공동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100개가 넘는 친목계, 수십개의 각종 모임이 모두 깨지고 경조사에도 서로 가지 않는단다. 5년여에 걸친 해군기지 갈등이 마을을 갈가리 찢어 놓은 것이다. 물이 귀한 제주에서, 사시사철 늘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내리는 두 개의 하천(강정천과 악근천)을 끼고 있는 마을. 땅까지 비옥한 덕에 마을 사람들이 고루 잘살아 ‘일강정’으로 불리는 자부심 넘치는 마을이었던 이곳, 평화롭던 마을 공동체가 산산이 깨져 버린 것이다.

‘주민과 상생하는 해군기지’를 표방하는 해군이라면 이 갈등의 주요 원인 제공자로서 이러한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에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했다. 특히 반대여론을 설득하고 주민들과 신뢰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해군은 오히려 찬반 주민의 갈등을 부채질하고 적극 조장하는 듯한 모습만 보여줬다. 추석 전날인 지난 11일, 제주해군방어사령관이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일부 주민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하며 ‘군납용 제주(祭酒)’를 추석 선물로 돌리다가 주민들의 항의를 받았다. 바로 전날 반대 주민들(강정마을회)에게 시설물 철거 계고장을 보내 ‘행정대집행’을 하겠다고 경고한 해군이 아니었던가.

강정마을회는 “군납용 추석선물 소동은 ‘네편 내편’을 가르는, 국가공권력의 치졸함을 드러낸 것”이라며 “해군기지로 인한 주민 갈등을 더욱 조장한 해군의 행태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필자는 해군기지에 대한 찬반을 떠나, 정부당국의 국책사업 추진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거버넌스’와 ‘소통’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주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국책사업이 대다수 국민들의 행복과 안녕을 보장하기 위해 시행된다고 한다면, 해당 사업으로 인해 피해를 볼 수 있는 이들에 대한 이해와 설득, 소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것이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이다.

해결이 안 되는 이유를 외부세력이나 이념으로 덧칠하기보다는, 그동안 소통을 위해 얼마나 진정성 있게 마을 주민들에게 다가서서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어 왔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소통은 ‘듣기’에서 시작된다.
2011-09-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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